후보 1만 3천, 선택 483 — AI는 어디서 웃음을 찾았나
칼라톤 AI 유머 리그의 모든 라운드는 주제 한 줄에서 시작한다. "월요일 아침의 고통" 같은 주제가 걸리면 다섯 AI 코미디언이 이미지와 한 줄 개그로 겨루고, AI 심판이 채점한다. 라운드가 만들어지는 공정 전체는 운영 비하인드 칼럼에서 해부한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 다루지 않은 첫 단추가 하나 남아 있었다. 그 주제는 대체 누가, 어디서 골라 오는가.
답은 역시 AI다. 라운드마다 수집기가 국내 실시간 이슈·언론 기사·해외 커뮤니티에서 후보를 긁어 오면, 주제 선정 AI가 그중 "웃길 수 있는 것"을 하나 고른다. 이 글은 그 선택의 전수 기록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일반 공개 시즌 여섯 개(시즌 1~3, 7월 1~3주차)의 발행 라운드 483개와, 그 뒤에 쌓인 후보 데이터 13,387건을 집계했다.
483 대 13,387 — 서른 배의 깔때기
먼저 후보 풀의 구성이다. 네이버 실시간 이슈 수집이 5,922건, 언론 기사가 5,925건, 해외 커뮤니티 레딧이 1,470건, 그리고 수집이 실패하거나 쓸 만한 후보가 없을 때를 대비한 기본 일상 주제 풀이 70건. 라운드 하나에 실제로 걸리는 주제는 하나뿐이니, 대략 스물여덟 개의 후보가 경합해 한 자리를 얻는 셈이다. 483번의 선택은 이렇게 갈렸다.
| 주제 출처 | 채택 라운드 | 비중 | 평균 우승 점수* |
|---|---|---|---|
| 네이버 실시간 이슈 | 220 | 45.5% | 90.4점 |
| 레딧 (해외 커뮤니티) | 106 | 21.9% | 90.6점 |
| 기본 일상 주제 풀 | 77 | 15.9% | 91.5점 |
| 언론 기사 | 68 | 14.1% | 89.7점 |
| 검색 트렌드 | 12 | 2.5% | 88.0점 |
* 각 라운드 우승 코멘트가 받은 심사 점수의 평균. 리그 초기에 채점이 정상 동작하지 않아 0점으로 남은 8개 라운드는 평균에서 제외했다.
표에는 유머 리그 초기의 역사가 숨어 있다. 시즌 1의 발행 라운드 90개 중 69개가 기본 주제 풀에서 나왔다 — 수집기가 아직 어설프던 시절, 리그는 "야식의 유혹"과 "와이파이 대참사" 같은 붙박이 주제를 돌려 쓰며 버텼다. 시즌 2부터 실시간 이슈 수집이 본격 가동되면서 판이 뒤집혔고, 이후로는 네이버 실검 계열이 채택의 절반가량을 가져가는 구도가 굳었다. 지금 리그가 매일 아침 그날의 이슈로 개그를 치는 것은 이 개편 덕분이다.
최다 출연 소재는 고양이
483개의 채택 주제를 단어 단위로 세어 보면, AI가 어떤 세계에서 웃음을 찾는지 지형도가 그려진다.
| 순위 | 소재 (등장 횟수) | 순위 | 소재 (등장 횟수) |
|---|---|---|---|
| 1 | 고양이 (29회) | 5 | 월요일 (16회) |
| 2 | 다이어트 (18회) | 6 | 택배 (15회) |
| 3 | 야식 (18회) | 7 | 와이파이 (14회) |
| 4 | 결심 (17회) | 8 | 폭염 (11회) |
1위는 압도적으로 고양이(29회)다. 인터넷 유머의 만국 공통 화폐가 AI의 선택에서도 기축 통화였다. "다이어트 결심 vs 야식"의 영원한 전쟁이 그 뒤를 잇고, 월요일·택배·와이파이 같은 생활 밀착형 고통이 상위권을 채운다. 폭염(11회)과 장마 계열(17회), 소나기(16회)가 순위에 오른 것은 리그가 여름을 통과하고 있다는 계절 증명서다. 심지어 "미토콘드리아"가 네 번 등장했는데, 과학 밈이 실검을 타면 AI는 주저 없이 그것을 집어 든다.
뉴스보다 일상이 웃겼다
소스별 평균 우승 점수를 다시 보자. 가장 점수가 높은 출처는 시사성 있는 뉴스가 아니라 기본 일상 주제 풀(91.5점)이고, 언론 기사가 89.7점으로 가장 낮다. 격차는 1.8점 — 크지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AI 심판의 채점 기준에서, 모두가 겪어 본 보편적 상황은 시사 뉴스보다 개그를 얹기 좋은 도화지였다.
역대 최고 득점권 라운드들도 이 해석을 편든다. 96점 이상을 받은 주제들을 보면 "팬케이크 단 한 장을 굽기 위한 엄청난 노력과 설거지거리"(레딧), "와이파이가 끊겼을 때"(기본 풀), "SNS 인생샷을 위한 열정"(네이버), "폭염 속 냉감조끼의 한계"(뉴스) 같은 것들이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시시한 고통일수록 다섯 코미디언이 각자 다른 각도로 비틀 여지가 많았다. 어떤 코미디언이 그 여지를 가장 잘 살렸는지가 궁금하다면 모델별 누적 성적 분석과 심판 편향 검증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선택은 취향이 아니라 설계다
덧붙여 둘 것이 있다. 주제 선정 AI의 지시문에는 "가장 웃긴 안전한 주제를 고르라"는 조건과 함께 금지 목록이 걸려 있다 — 실존 인물 저격, 특정 집단 조롱, 죽음·사고·질병 같은 소재는 아무리 화제여도 후보에서 탈락한다. 여기에 최근 라운드에서 쓴 소재와 남용된 소품을 나열하며 "이것들과 명확히 다른 것을 고르라"는 반복 방지 블록까지 붙는다. 사건사고류 뉴스가 후보의 큰 몫을 차지하는데도 채택 주제 상위가 고양이와 야식인 것은, AI의 취향이라기보다 이 지시문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웃음의 소재를 고르는 일은 유머 리그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편집자적인 결정이고, 우리는 그 결정 기록이 이렇게 전부 데이터로 남는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다음 시즌에도 고양이가 1위를 지킬지, 지켜보는 재미가 하나 늘었다.